목표를 정하기 어려울 때

목표를 정하기 어려울 때

어느 하나 잘못된 선택일까봐, 결정을 못하게 된 순간이 있지 않으신가요?

저는 오랜기간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모순’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모순

들어보신 적 있으실겁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아는 게 힘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저는 모순을 느낍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답답하더군요.

‘아는 게 힘이다’를 믿고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좋았어요.


7년정도 지났을까요?

배움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책에서 많은 도움을 얻은 저는,

어느샌가 ‘책이 내 생각보다 낫다’고 믿게 됩니다.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죠.


자기 의심은 파괴적이었습니다.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어 도전하지 않았고,

도전 없는 삶에 불만은 쌓여갔습니다.


메말라가는 영혼을 느끼면서 배움을 잠시 멈췄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상태가 더 좋지 않으려나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모순이 느껴졌습니다.


믿음을 해체하기

‘대기업 가야 해’, ‘대학 졸업장은 따야해’, ‘나는 이래야 해’, ‘너는 저래야 해’, ‘세상은 이래야 해’…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품고 살고 계시나요?

우리가 믿는 것들은 과연 ‘진리’일까요?

“’진리라 부르는 것들도 사실은 익숙함 속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 식글북적 모임중 나온 이야기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 정해놓은 ‘이상적 모습’에 끼워 맞추려 애쓰며 스스로를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정답’은 누구의 것일까요? 내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것일까요?


제가 믿고 있던 것 중 하나는

‘길이 보여야 움직일 수 있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때는 책을 읽었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을 시도해보며

‘이게 내가 걸어갈 길인가?’를 가늠해보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는 ‘길이 있어야 행동한다’라는 믿음에 갇혀 있었어요.


어느 길로 가도, 모순이 존재했기에

길을 선택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게 됩니다.


길이 만들어지다

‘길이 보여야’라는 조건을 없애버리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걸어온 곳이 곧 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행동을 시작하면, 그게 길이 되는 것임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 기존 : 길이 보여야 → 행동한다
  • 변화 : 행동하니까 → 그게 길이 된다



목적지

물론 무작정 길을 걷는 것은 아닙니다.

대략 ‘이런 느낌이 되면 좋겠다’하는 목적지 정도는 보면서 움직입니다.

게속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미래를 상상하면서요.

‘나는 어떻게 하고 싶지?’, ‘어떻게 되길 원하지?’


“’되고 싶은 모습을 연기하다 보면, 정말 그 사람이 되어있다’라는 구절을 봤습니다. 저는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는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가면 없이도 살아보려고 조금이라도 더 솔직한 나를 연기해보고 있어요.” - 식글북적 모임 中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그려보고 계신가요?

일단 그 방향의 작은 행동을 시작하면, 점점 그 상태가 다가오지 않을까요?